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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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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석산 조회 349회 작성일 24-03-28 16:40

본문

잿빛 하늘, 낯선 바닷가, 낮게 깔리는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걷어내면 고요가 남는 방. 갖가지 우울과 파토스가 몰려올 기세나 속삭이는 빗소리, 처마 끝에서 물방울 듣는 소리가 그들을 넉넉하게 물리친다.


집들은 자신의 키보다 높은 돌담을 두르고 고개를 겨우 내밀고 있다. 고샅은 돌담 사이를 비집고 물처럼 흐르고 있다. 바다로 코를 내민 방파제가 안으로 옥아 있고, 배들은 어린아이처럼 그 품에 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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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질금거리나 바람은 없다. 방파제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배들은 정물 같다. 잠포록하다. 아침 무렵 항구로 들어온 배가 차를 몇 대 부리고 서둘러 떠나는 동안 부산함이 잠시 돋아났을 뿐, 이내 조용해졌다. 


창을 열고 포구를 보니 방파제가 흐릿하다. 굵어진 비는 안개를 불러왔다. 누구는 방파제를 혀라고 한다. 너른 바다를 향해 무슨 말을 하는, 하고 싶다는 걸 방파제에서 읽는다는 건 줄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여인과 입맞춤하면서 그녀의 혀를 빨아들인다,는 구절까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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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는 방파제 끝에 뱀이 산다는 전설이 있다. 여인과 뱀, 상상을 한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하면 그럴듯하다. 거기다가 오늘처럼 안개라도 깔리는 날이라면. 낯선 포구에 혼자 있는 사내가 따라갈 만한 이야기다.


방파제를 볼 때마다 호기심을 떠올린 탓에 쉽게 그의 감성에 동감할 수 없다. 방파제는 넓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처럼 코를 내밀고 있다, 는 표현이 훨씬 좋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방파제에서 혀를 떠올린 그는 무슨 무의식이 그를 지배하기에 그렇게 생각할까. 프로이드의 설명, 이건 너무 상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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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의 비렁길은 자연스럽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은 바닷가 벼랑을 타고 이어진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바다와 바위 벼랑은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세상에나, 동백을 울타리로 삼다니...


길을 따라오는 동백 울타리는 귀한 풍경, 풍정이다. 경景만으로는 부족하다. 정情이 들어가야 한다. 비렁길을 덮을 듯이 바투 다가오는 꽃들은 또 어떤가, 좁쌀 냉이, 광대수염꽃, 개불알풀꽃은 바다로 간 눈길을 자꾸 아래로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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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흘깃 보아야 한다. 응달에서 검은빛마저 서려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마치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여인을 본 거 같다. 그게 밝은 햇살 아래에 드러나면 그 붉음 탓에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예쁘다’는 말을 붙이기 힘들다. 그냥 동백스럽다고 해버리고 싶다. 이미지만 머릿속에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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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땅에서 돋아난 노란색이다. 귀한 빛이다. 예쁘다. 냉이꽃의 흰빛, 개불알풀의 보랏빛보다 민들레의 노오란색이 좋다. 깨끗한 게 칙칙하지 않다.


금오도에 들어온 지 사흘째다. 작은 포구의 중턱에서 바다로 턱을 내밀고 있는 펜션에 머물고 있다. 이백 살이 족히 넘었다는 동백은 자신이 이고 있는 꽃보다 더 많은 꽃을 바닥에 뿌리고 있다. 군데군데 미련처럼 고여 있는 물이 꽃을 비춰낸다. 아래가 더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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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많이 멋진 50대 초반의 주인이 어젯밤 김밥을 만들어왔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몸을 세운 펜션은 방이 10개가 넘는다. 하지만, 머무는 사람은 나 혼자다. 그는 고향은 근방이나 서울에서 살다가 내려온 사람이다. 그도 혼자다. 밥을 먹을 데가 없는 이 마을에서 나의 존재가 그의 가슴에 어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님이라는 객이 아니라 이웃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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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방파제를 혀라고 하는 사람의 감성과 싸우고 있다. 글이 막히면 창을 열고 자꾸 방파제를 쳐다본다. 눈을 옆으로 돌리면 바로 바닥에 흥건한 동백꽃이 보인다. 그럴 때면 비렁길에서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 맑은 민들레꽃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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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동백은 꽃이 많지 않다. 이백 살이 넘은 동백은 꽃을 너무 많이 피워올리고 있다.


이정옥의 ‘숨어 우는 바람 소리’가 좋은 건 사실이다. 노래보다 연주가 더 좋다. 가사에서 ‘숨어 우는’도 그렇지만 ‘바람 소리’도 맘에 들지 않는다.


황금이 나왔다는 마을, 여기서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갈까?

쥐고 갈 게 없어도 분명한 건 이것이다.


금오도는 아름답다!


https://youtu.be/vLBlZaTAWLM?si=zcgAOcy7o0DDsusT

이정옥 - 숨어우는 바람소리 피아노 연주

이정옥 - 숨어우는 바람소리 피아노 연주 안녕하세요^^구독과 좋아요는 무료입니다. 마음껏 눌러주세요~^^♡#이정옥#숨어우는바람소리#이정옥숨어우는바람소리#숨어우는바람소리피아노연주#흘러간가요피아노 www.youtube.com


댓글목록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뜨게질을 하다가 시선을 잠시 바꿀 필요를 느끼며 창 밖을 보는데 여기도 창 밖이 희뿌연 안개가 밝은 서쪽으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잠시 고향 홈에 들어오니 

접해 본 기억 없는 글이 올라 있어 봅니다.

 절터 옆 미역 널방?

함구미 선착장?

긴가 민가하며 보는데

마지막 황금에 맞군 했습니다.

언덕 위 그 팬션이군요

동백나무 울타리 옆 길도 

좋고

테크 위를  빗물과 같이 

꾸민 동백 꽃 풍경도 멋집니다.

그리고 숨어 우는 바람 소리 연주도

해 질 녘 감성을 자극합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여기가 고향이라 잘 아시는군요.

처음 와본 곳인데, 좋은 곳입니다.

사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돌담이었습니다.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의 댓글

미리 작성일

바람이 들고 나기에 돌담만한 담이 없지요.

약한 바람은 돌 사이로 다니지만 센 태풍이 불면 스러지지만 또 쌓으면 되니까요.

시멘트 벽돌 담장을 요즘 쌓기도 하지만 넘어가면 재 사용이 안 되고 폐 건축 자재가 되며 비용도 부담되지만 섬에 가장 많은 재료가 돌이므로 돌담장은 섬에 먼저 살아보신 분들의 지혜입니다.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돌담 여기저기 바람구멍을 만들어 두었더군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저 동백나무 참 환상적이네요 

어딜가나 낯선 냄새는 참 묘한 설렘이 있지요

자주 오시어 향기로운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아름다운 글과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금오도가 사는 곳에서 많이 멀군요.

자주 올 수 있을지는 답할 수 없으나 오게 되면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은 드립니다.

<span class="guest">향기</span>님의 댓글

향기 작성일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에 펜션에서 바라다보는 바다,배,수평선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바라다보이는 방파제가 바닷가 마을마다 있는데 여름철 저녁이면 멍석 가지고 나와서 시원한 바닷 바람에

더위를 식히기도 했지요~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옥수수도 같이 먹곤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여름방학때는 시간만 있으면 방파제에서 줄을 지어 하나 둘씩 바다로 뛰어내려서 헤엄도 치고 놀기도했구요~그 때가 그립습니다.

좁쌀냉이, 광대수염꽃, 개불알풀꽃등 꽃이름을 많이 알고 계시네요~ 

금오도에 가셨으니 좋은 추억 많이 담아가십시요~

편안한 밤 되세요~~^^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꽃 이름은 다음 검색창에서 사진을 찍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이용했지요.


근데 어디나 시골은 그러하지만 풀이 무성한, 덩굴로 뒤덮힌 집들은 마음을 씁쓸하게 하더군요.

<span class="guest">홈지기</span>님의 댓글

홈지기 작성일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작품인데 

사진이 휴대폰 큰 화면이나

컴퓨터로 보면 너무 작게 보이네요

원본 파일로 수정을 해주시면

더욱 빛나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 문득,

금오도의 추억이 손을 내밀면 

또 가볍게 다녀가세요

너무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홈지기님이시군요.

나중에 저녁에 해보겠습니다.

처음 올리는 글이라 사용법이 미숙한 거 같네요.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사진을 원본으로 바꾸었습니다. 일부는 교체도 하고...

<span class="guest">홈지기</span>님의 댓글의 댓글

홈지기 작성일

감사합니다 크게 잘 보이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어찌보니 방파제가 혀처럼 보이기도

보는사람의 몫 이겠지만

저도 방파제를 보면 혀 라는 감성과 

싸울듯 합니다.

비오는날 흥건히 젖은 동백꽃들

몽환적이네요.

참 이쁩니다.

담담하면서도 정갈하게 담겨진 글 

감동입니다.

<span class="guest">이석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이석산 작성일

실은 조금 변용한 겁니다.

님의 댓글이 실토하게 만드는군요.


윤후명의 소설, '방파제를 향하여'의 일부입니다.



 



홈지기님의 댓글

홈지기 작성일

이석산 님 글 금오도 풍정이

3월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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