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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종희 조회 821회 작성일 23-08-31 22:3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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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차는 고향의 중턱을 단번에 휘어 돌지 못한다. 

오르막은 급하고 모퉁이를 휘어 도는 도로는 뾰족하게 각을 세웠다. 연결되지 않았던 길을 생각해 보라고, 얼마나 반듯해졌냐고, 아무리 이해를 포개도,  과거를 지우고 편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저 부족한 생각을 뒤적이며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웃서고지 오르는 길은 부도 앞바다에서도 훤히 보였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가 다시 뭍으로 떠나기 위해 여객선을 기다리던 종선에서, 커다란 엄마의 설움을 유추할 수 있었던 건, 한쪽 팔을 돌담에 올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꼼짝하지 않는 엄마 모습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툭 터진 슬픔을 애써 깨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울컥울컥 차오르는 그늘을 가두고 다른 길을 돌아볼 여지가 없다는 것은, 쉽게 이탈을 꿈꿀 통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언가에 휩쓸려 떠내려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하얀 카라의 단아한 교복을 입고* 이 길을 걸어 집으로 올라갈 때면 주변에서 밭일을 하고 계시던 동네 어른들은 “아이고,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라고 놀리곤 하셨다. 그때 내 키는 해가 바뀔 때마다 10cm씩 자라서, 먼저 커버린 친구들을 거의 따돌리고 있었다. 


이쯤 어딘가에 엄마가 일구던 작은 밭이 있었다. 내가 밭에 가는 날은 심부름으로 오이나 가지를 따러 가는 날이었다. 하루는 가지 꽃이 하도 예뻐서 쪼그려 앉아 머뭇거리다가, 몇 개의 별이 갑자기 쏟아지는 엄청난 통증에 아득해져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고통의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나 발견한 것은 왼손을 다부지게 물고 있는 철망 상자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하다 하다 이제는 쥐덫에 물려오냐”라고 버럭 화를 내시고는, 너무도 간단하게 쥐덫의 주둥이를 벌려주셨다. 이래저래 서럽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억새풀을 하러 낭끄터리에 가는 날이면 나를 앞세우셨다. 그러고는 온 바다에 깔린 은빛 윤슬과 한 몸이 되어 출렁이는 억새꽃을 담아 오게 하셨다. * 억새풀을 풀어놓고 뒷마당에 앉아 한가롭게 이영을 엮으시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급하게 목소리를 높여 나를 부르셨다. 


어제의 노을이 오늘의 자리에 없음을 일깨우던 내 유년의 높다란 새랍이 보인다. 바로 그 높이에서 왼쪽 담을 꺾어 나오면 윗샘으로 이어지던 비탈길은, 곧장 직진하는 대나무 습성에 온전히 침식되고, 돌담을 따라 안도로 오르던 길은, 잡목들의 자리다툼에 영토를 잃었다.


틈만 나면 돌담을 키우시던 할아버지가 새랍에 있는 돌 의자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가락(시조)을 느슨하게 흥얼거리던 풍경은 꿈에서 본 것일까. 그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은 결국 세월이라고, 할아버지는 이미 의식하고 계셨던 것일까. 그래서 그리도 미지근한 발자국만 남기고 떠나신 것일까.


도로 끝에 하차한 우리는 우비 매무새를 고치고 장화를 신는다. 바로 건너편에 동백낭구숲이 보인다. 아니, 그보다 먼저 아치 터널이 보인다. 대대로 울창했던 동백낭구숲이 움푹 페이는 동안, 힐끔 쳐다보고 가볍게 스쳤으면 그만이라는 핀잔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거대 기류는 무엇에 쫓기어 두고두고 치유할 수 없는 생채기를 저리도 또렷하게 남긴 것일까. 새로운 구도가 너무 낯설어 그곳에서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던 우리의 추억을 찾을 수 없다.


제멋대로 뻗어버린 생각의 잔가지를 밀치며 아치 터널을 빠져나간다. 제초기가 들풀을 스친 자국들이 가지런히 도열된 길을 따라 오른다. 불쑥 고개를 내민 삐비꽃이 보이고, 지난해 돌아가신 큰 아버지 무덤이 보인다. 그리고 흠뻑 젖은 채로 무덤가에 철조망을 치고 계신 사촌 오빠가 보인다.


“형님, 우리 막둥이 두고 갈까요?”


“아이고 됐네, 내가 오히려 그 막둥이 치다꺼리할 걸세”


오빠들 대화에 어리둥절하던 우리 막네, 뒤늦게 벙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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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금오도 에세이----


*p-121 누가 이 길을 아시나요/명경지수

*p-171낭끄터리/이종희



 [고향으로 가는 길-1]


 [고향으로 가는 길-2]


 [고향으로 가는 길-3]


 [고향으로 가는 길-4]


 [고향으로 가는 길-5]


 [고향으로 가는 길-6]


 [고향으로 가는 길-7]


 [고향으로 가는 길-8]


댓글목록

이종희님의 댓글

이종희 작성일

고향으로 가는 길은
지난 5월 다녀온 고향을
현재 진행형으로 쓰면서
지난 기억들을
틈틈이 접목 시키고 있습니다.

단편으로 읽어도 무리없지만
새로운 분들을 위해
지난 글들을 아래에 붙여두었습니다.

오늘밤 블루문 놓치지 마세요^^

안개님의 댓글

안개 작성일

글을 읽는 동안
가슴이 따뜻해지다 코끝이 찡하다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합니다.
다음편이 기대 됩니다.
안도 바다 내려가는 길이
심히 구불거리던데
울 동생은 그위험 천만한 길을 잘도 가더라구요.~~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안도 바다 내려가는 길은 어디였을까요
안도에도 생각보다 동네가 많습니다
서고지 본동 이야포 오지암 상상동 동고지 ㅎㅎ
깊은 잠에 빠져있던 이야기가
웃서고지 오르는 길 따라
깨어난 느낌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

<span class="guest">두망안</span>님의 댓글

두망안 작성일

유년시절 섬에서
누구나 깊디깊은 곳에 저마다의 돌멩이가 박혀 있었는데~
그 돌멩이를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 안아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로 재창조된 글들이 아름답네요~ ^^
계속 기대됩니다.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답글이 더 빛나는 순간입니다
영영 빠지지 않을 것 같던 돌멩이가
세월에 마모되어
가끔 이렇게 말랑할 때가 있네요
제가 모르는 두망안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묻어버리면 더 편할 것 같아도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저도 몰랐던 가벼움에 풍선이 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span class="guest">선우향</span>님의 댓글

선우향 작성일

별이 쏟아지는 상상을 잠시 했는데 쥐덫에 걸렸군요ㅋ
울다가 웃다가 어디? 에 털나면 책임지세요 ㅋㅋ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ㅎㅎ 네 제가 책임질게요
님이 남겨주신 따뜻한 온기로
오늘도 행복했습니다
행복하세요 ♡

<span class="guest">솔향채</span>님의 댓글

솔향채 작성일

고향가는 길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슴설레는 시간이지요
고향에서 살고있지만 어린시절 추억들을 마음속 깊숙히 묻어두었다가 한번 꺼내 놓으면 본물 터지듯 술술
터지는 고향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싫증나지 않은 이유는
같은 고향 하늘 아래에서 같은 느낌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고향의 돌담 하나도 풀 한 포기도 반갑고 좋은 곳

곧 추석이 다가오니 고향에 조상님들 산소에
벌초 해야 하는 때가 다가와 여기 저기서 기계 돌리는 소리가 윙윙 거리네요

가끔은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면 어린시철 추억을 꺼내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언니 동생과 지지고 볶으면서 살았던 기억을 애써 소환해 미소를 지어보는건
이 또한 금오열도 홈페이지에서 많은 분들의 맛나고 아름다운 고향이야기가 있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보네요.


다들 글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종희님의 고향가는 길도 끝이 없이 이어지길~
매번 잘 읽고 있네요
감사해요.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지난여름휴가때도
우리 남매는 벌초를 하고 왔는데
해무까지 가세한 습도 덕분에
고향 초록의 번식은 생기가 넘쳐요

지친 마음을 풀 수 있도록
넉넉한 품을 내준
고향 홈 덕분에
우리는 여기까지 도착한 것 같습니다
반가운 고향 소식
늘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

산벚나무님의 댓글

산벚나무 작성일

애린님의 글에는 의외의 스토리가 묻어 나요.
녹섬의 평온한 바다가 아닌
알마도 밖의 거칠은 바다가 보여요.
가끔은 관념적이고 축약의 압박에
끼울박수
우동사리가 클릭을 망서릴 때 도 있지만

애린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칭찬은 연둣빛을 초록으로 성장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제 키가 더 자라날 것 같은데 걱정이예요 ㅎㅎ
우동사리의 편한 소화를 위해
좀 더 심사숙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span class="guest">감나무</span>님의 댓글

감나무 작성일

짜여진 일정이 나를 쫓아
홈피에 들어오는 일이 바쁘네요

애린님 글
생선 가운데 토막 남겨 먹듯
아끼다 아끼다 먹어봅니다.
감동 입니다.

애린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정말 하루가 너무
숨가프게 흘러가네요.
그럼에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늘은 너무 파래서
자꾸만 올려다 보게 해요
늘 기쁨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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