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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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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희 조회 531회 작성일 23-05-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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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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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바닷물을 다독이는 달의 마음을 아는 까닭에 지구는 달이 휘청거리지 않게  뒤척이느라 온 몸이 파랗게 멍이 든 것일까. 거친 바다에 터를 잡는 아버지의 마음도, 아버지를 위해  털옷을 짜는 딸아이의 마음도,* 모두 그 힘으로 건재하다는 것을 경험하며 우리는 이 풍진 바다를 건너왔다.


하늘이 너무 맑아 뱃길이 끊긴 것을 수긍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 미포를 스쳐 심포로 방향을 틀고서야 내 마음도 고삐를 풀어 유순해졌다. 얼기설기 쌓아 올린 돌담을 비집고 청보리가 초록의 풋내라도 풍기는 날이면 속도를 늦추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개는 언제나 가까운 거리에서 느닷없이 다가섰다. 심포에서 장지로 넘어가는 그 길이 그랬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거두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내 심폐기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 친구들은 기어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나무가 아무리 뾰족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들, 몸의 한계에 지배당한 내 정신 속으로 침범할리 만무했다.


그렇게 아찔하고 암담한 시간에 마모된 감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침착하고 의연하다고 저마다 놀라워했으나, 바닥의 깊이를 알지못해 넝쿨지던 두려움도,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추락하고서야 모든 건 무채색으로 지워졌다. 그때는 과거의 바탕색을 비켜가며 다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나는 별 동요 없이 시행하느라 부당한 것에 그리 오래 마음을 담그지 않았다. 밑바닥 거친 숨비 소리를 토해내고 일어나 앞이 보일 때는 언제나 고갯마루에서였다. 그곳에 있던 절망의 진통제는 저 멀리 눈부시게 펼쳐진 내 고향마을이었다. 누군가 그때의 안도(安堵)를 알아보고 기억한다면 좋으련만, 아무도 내가 본 그날의 풍경을 풀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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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대교가 연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시 그 고개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가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고통의 흔적을 지워주던 순간을 잊지 못해, 그 후로 오랫동안 잔물결 이는 풍경을 찾아 자주 길을 나섰다. 그로 인해 참 많은 고개를 순하게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공간을 뛰어넘는 안드로메다는 막연한 그리움까지 확장해 장지의 불빛을 돌아보게 했다.* 만약 내 좋은 사람들과 원시의 지명에 가닿을 수 있다면, 돌 무너진 자리는 으름 넝쿨과 이웃하며, 오랜 날 유년을 뒤적이던 그 선량한 마음들을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안도대교의 당당한 기세가 달려온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중 나온 저 푸른 조망을 그냥 스칠 내가 아니다. 나는 한사코 저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을 좋아했다. 내친김에 소리도 등대에 들러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들꽃무리를 자세히 볼 수 있다면 나는 또 얼마나 환해질 수 있을까,* 아무리 내 열망이 상승곡선을 그려도 오늘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서고지로 가는 길을 미루고 두몽안에 접어들자 건너편 식당 앞에 우리 일행이 보인다. 미끼를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기어이 다가가 희생양이 되어준다는 강구도, 저 식당 주변 어딘가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에 감동한 바다들이 살가운 것들에게 현혹당하지 않고도 의젓하게 잡혀와 우리의 미각을 출렁이게 할 것이다.*그러나 내 마음이 미리 닿지 않으면 그 안의 상황을 예감하지 못한다. 강풍을 동반한 폭풍주의보로 많은 손님이 취소된 바람에 준비한 음식과 주변의 민박이 한가하다는 소식이 그랬다. 섬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면 돌산이나 여수에 머물지 못하고 더 깊숙한 내륙으로 올라가야 하다는 걱정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올라온 도미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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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향수는 언제나 음식이 우선순위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놓는 삼종 세트가 감동인 것은, 고향의 마음이 덤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고향을 비워둔 사이 아득했던 고향 소식이 투명해지고 할 일이 많은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여전히 일꾼은 건장하지만, 겨우내 비어있던 고향 집은 예측불허다. 짧은 한때 고양이의 서식지로 전략한 후로 엄마의 손때 묻은 많은 세간살이들은 버려졌고, 그 후로 고향을 찾을 때면 침구를 포함한 이삿짐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해질녘 뱃고동 소리가 장엄하게 울리면, 어김없이 여객선 깃발이 펄럭이던, 그 아릿한 마당널을 휘감고 직선 길에 접어들자, 백파의 호위를 받고 있던 알마도가 성큼 다리에 올라 들뜬 볼륨을 높인다.


"오~호~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너희들이 오느라 그랬구나!

그 험악한 파도의 비위를 어떻게 맞춘 거지? "



계속


------금오도 에세이------


P-222 바다와 아버지/김정화

P-39 내 친구들/애린

P-159 소리도 등대/미리

P-116 바람불어 좋은 날 장지항에서/명경지수

P-86  지금쯤 그곳에 가면 얼음이 터지고 있다/오승훈

P-177 강구/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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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으로 가는 길-1]


 [고향으로 가는 길-2]


 [고향으로 가는 길-3]


 [고향으로 가는 길-4]


 [고향으로 가는 길-5]


 [고향으로 가는 길-6]


 [고향으로 가는 길-7]


 [고향으로 가는 길-8]


댓글목록

<span class="guest">금오도민</span>님의 댓글

금오도민 작성일

인용의 대가?
고향가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열매는 다네요.
삼종세트가 포함된 화려한 식탁이 한없이 부럽네요
저 맛있는 금오열도의 한상은 최고지요.
잘읽고 잘먹고 갑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새벽부터 오발령 재난 문자 때문에
그잖아도 정신없는 서울이
너무 소란스러웠습니다
삼종세트는 나중에 또 만나는데요
고향 밖에서는 고향이 선명한데
왜 고향만 가면 바깥 세상이
까맣게 지워지는지 모르겠어요

금오도 에세이에 나오는 글들은
거의 피부에 와 닿는 글들이라서
더 공감이 가고 감동이 있습니다

오늘도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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