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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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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요산요수 조회 798회 작성일 24-03-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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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설 무렵이었을 것이다. 선거철이 다가온 만큼 연일 수두룩히 들어오는 전화기 문자들.. 국회 입후자부터 보험회사, 카드회사 ,무슨 광고성 글까지 전화기에 쌓이는 문자들을 지워가던 중 문득 낯익은 이름으로 보내온 글이 (하마터면 같이 지울 뻔 했다) 눈에 띄었다.


"금오홈에서 000님을 찾고 있으니 전화번호가 맞다면 통화 한번 하고 싶다고 애린님 이름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금오홈은 잘 유지되고 있다는 글도 덧붙여...


낯익은 이름에 늦었지만 답글로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눈 후 재개한 금오홈을 소개하며 금오도에세이 책이 출간되어 저자 분들께 보내드린다며 책사진도 동봉해 주신 것이다. 귀가 후 일러준 대로 인터넷 금오홈에 들어가 보니 전보다 많이 업된 분위기로 시작한 지 1년도 더 지난 상황., 아무리 고향에 대한 애정이 전만 못하다 해도 너무 무심했구나 싶었다. 그로부터 열흘 후 책을 받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좀 작은 사이즈였다. 책 내용에 비춰 옛 추억을 떠올리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 고객층이 시력이 퇴화되는 50대 이상일 텐데 책과 글씨가 좀 컸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책은 판매목적 보다 기념에 치중한 거라는 애린님 설명에 수긍이 갔다. 크기가 여행자들이 배낭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금오열도 지명 찾기, 그에 대한 역사와 유래 알아보기 등 용도로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제행무상은 우주의 법칙이라 했던가. 과거 군에서 제대하고 몇 달간 고향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해 여름 태풍 베라에 의에 쑥대밭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그래, 내 뜻은 서울에 가서 펼치자'며 산적한 농사일을 뒤로한 채 상경했다. 그때부터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시작된 12년간의 직장생활.. 시간이 흘러도 잘 적응되지 않은 객지생활의 힘들고 외로운 많은 시간들을 고향생각으로 달래야 했다. 설날 귀성열차 타려고 서울역 대합실서 새벽부터 오들오들 떨고, 콩나물시루 속 같은 기차에 6시간 이상을 서서 오가야 했던 힘든 시간들도 지나고 보니 소중한 추억이다. 고향에 도착하면 정든 집과 가족을 만나고 어릴 적 뛰놀던 옛 동산을 볼 수 있다는 셀레임은 모든 일을 감내할 수 있게 했다. 농번기 때면 회사에 휴가를 내고 그 먼길을 내려와 쟁기질 하던 고향 산밭은 지금 아름드리 잡목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돌아가자 그만 고향으로.." 12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묵힌 밭을 개간하여 농사도 짓고 소도 띠끼고 낚시도 하며 예전처럼 살아가려 준비했으나 여의치 못해 여수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해야 했고 한동안 남면과 여수를 오가며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그때 인연으로 만나게 된 금오도 홈페이지는 주로 출향한 금오도인이 서로 소통하며 정을 주고받는 역할이 돼 주었다. 나도 같은 입장에서 끼어들게 되고 고향 옛 시절이 그립고 마음이 울적 할 때면 막걸리 한잔 마시고 고향 홈에다 술주정하듯 글을 올리곤 했는데 그 글들이 금오도 에세이에 실려 있어 짐짓 놀랐다. 부족함에도 다수를 선정해 주신 홈지기님께 감사를 드린다.


책 본문에 들어가서 제1부 정겨운 이야기 편에 애린님이 독담불 제목으로 사연을 적었다. 내가 하마터면 독담불과 깊은 인연을 맺을 뻔 했기에 쉽게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 내가 태어나 1살 되던 해 병을 앓아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애가 죽었다 판단한 부친은 이불에 싸서 독담불 속에 집어넣기 직전 살아났다고 한다.


과정서 살짝 떨어뜨린 게 오감을 자극한 까닭이었으리라.


남 달리 굴곡 진 삶을 살아온 생을 돌아보면 그때 차라리 독담불속에 들어갔다면 하는 생각...장자의 우화를 보면, 장자가 길을 걷다 만난 해골의 머리를 막대기로 두둘기며 왈 "왜 죽었소?내 천지신명께 부탁하여 다시 태어나 부모처자가 있는 고향에서 편히 살게 해 주겠소"하자 그 해골이 장자의 꿈에 나타나"죽음에는 군왕도 신하도 구별이 없소 사계절도 없고 편안하게 천지와 함께할 뿐이오, 천지의 봄과 가을이 나의 봄가을이라 이 같은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소 왕의 즐거움이라도 나를 따를 수 없으니 그럴 필요 없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해 어쩌면 장자의 우화 속에 그 답이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하여튼 어릴 적 소띠끼며 만난 무수한 독담불들 어쩌면 나와 친구가 될 뻔했던 인연 탓인지 따뜻하게 다가가 어루만져 주고픈 충동을 느끼곤 했다.


제2부 맛있는 이야기 편에 실린 공명님의 꽁보리 밭 글 중에서 '가난과 궁핍의 대명사였던 꽁보리밥은 부끄러웠고 가난도 부끄러웠다. 도시락을 의자에 놓고 엎드려서 먹거나 책상위에서 먹더라도 뚜껑으로 가려서 먹었다.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부끄러움을 먹었다. 그것도 청운의 뜻을 세운 학교라는 공간에서 말이다 지난했던 세월이었다.'당시 내가 경험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어찌 이리도 절묘하게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난 꽁보리밥 대신 빼깽이 도시락을 자주 싸갔다. 반찬그릇 국물이 흘러 교실에 냄새피울 필요도 없고 가난을 일정부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 외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남 중학교 입학했을 때 두포. 유송. 안도 연도출신 낯선 친구들이 많이 들어왔다. 특히 두포교 출신 여학생들이 예뻤는데 그중 관심이 가는 한 여학생이 내 옆자리에 앉은 그쪽 출신 아이와 친한 것 같았다. 가게에서 빵 과자를 사와 서로 나눠먹고 참고서도 빌려가는 등 그런 이유로 내 책상 쪽으로 자주 왔다. 순간 두근거리는 묘한 기분... 한번은 옆자리 친구에게 참고서를 빌리러 왔는데 집에 두고 안 가져 왔다며 대신 내 것을 주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되는 수학 완전정복,,,그런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로 가져왔다. 다음날 옆자리 친구에게 듣기로 책 모서리에 밴또 반찬국물이 배어있어 냄새 때문에 볼 수 없었다고... 그 말을 듣고선 너무 망연하여 며칠간 학업에도 지장을 받았다. 그런 후 그녀에게 마음 한번 비춰보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되고 수십 년이 흘러 비렁길 1.2코스 답사를 나서 초포마을을 지날 때 문득 그때 그 여학생 모습이 떠올려졌다. 저곳이 바로 그녀뿐만 아니라 육공주집소녀 ,감나무집소녀 같은 경국지색 미인들을 연달아 냈던 명당 터.. 능히 그 후대가 이어지지 못한 채 지금은 세월이 흘러 고즈넉함 속에 묻혀있는 마을전경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퀭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제3부 금오열도 이야기 편에서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감상하는 듯 연도의 명소 대룡단과 소룡단, 그 일대 바다풍경을 소개하고 감상 평을 적은 명경지수님 글은 금방이라도 발길을 그쪽으로 잡아끌기 충분했다. 금오열도 웬만한 좋은 곳은 다 둘러봤지만 그쪽은 아직이다. 내 어려서 고모님 댁이 연도 떡개에 있어 방학 때 되면 사나운 물길을 무릅쓰고 자주 놀러 갔었지만 낚시를 좋아해 그쪽으로 출조 다니신 고숙님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소룡단 인근 바닷가서 잡아온 고기는 그 종류와 크기 맛에서도 우리 동네 바다에서 나는 고기들에 비할 바 아니었다. 내 언제 시간 내어 연도를 가 그 옛날 고숙님이 잡았던 고기들을 낚아보고 싶고 소룡단과 대룡단 그 일대의 코굴 솔팽이굴 같은 명소도 구경하고 싶다. 또한 그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명경지수님 글에서처럼 스스로를 만경창파속에 일엽편주임을 느껴보고 싶다.


제4부 5부에서도 금오 저자님들의 고향 옛정취와 그리운 사연들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사정상 더 적을 수 없다. 나이 탓인지 컴퓨터 앞에 오래있으면 눈이 아프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금오도 에세이에 실린 저자님 글들이 큰 틀에서 보면 한 점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우리들 탯줄이 묻히고 함께 자라온 우리들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금오인으로 살아가는 자부심이다. 사랑이 식은 노년부부가 지난한 세월을 함께 해온 정으로 살아가듯 고향이 낯모르는 외지인으로 교체되고 시멘트 덧칠로 섬 환경이 변해가도 어찌 미워하고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때 맞춰 발간한 금오도 에세이와 고향 홈은 고향에 대한 식어가는 애정을 되돌리는 불쏘시게 역할이 돼 주리란 기대해 마지않는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역시...역시 입니다.
슬프고 애틋하고 아프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는 저 힘의 능선은
역시나 섬세하게 펼쳐주신 진솔함에 있지요.
쏨뱅이님을 포기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먼 길 돌고 돌아도 찾을 길 없던 쏨뱅이님이
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네요.
혹시나 모른다는 심정에 문자를 드렸는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답변이 없길래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적처럼 답변이 왔지요.

정말 쏨뱅이님이 독담불과 인연이 깊어졌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계 하나를 잃는 겁니다.
아무리 힘들고 외롭고 절망적이어도
살아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인것 같아요
다시 쏨뱅이님을 만날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독후감 너무 감동적이에요.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많이 풀어주세요
감사합니다~^~

<span class="guest">외기러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외기러기 작성일

글이 좀 어둔감이 있죠?
유쾌한 분위기로 바꿔 하나 더 올릴까요? ㅎ

오랜 시간을 금오홈을 떠났었었는데도
잊지 않고 찾아 주시니 너무 고맙지요.
제 글은 애린님이나 산벚님 명제님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
그분들과는 달과 반딧불 정도 차이라면 맞겠죠.
자주 오시는 못동여사 미리내님만 해도 저보단 한참 윗선..
그럼에도 내 글을 좋게 평가해주니 감읍할 따름이네요.
홈에 달인급 필력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
운영자로써 든든하시겠어요.
저도 그분들의 글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고맙기 그지 없어요.^^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의 댓글

애린 작성일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위 작품도 매우 아름다운데요
또 다른 분위기 작품도 너무 기대가 되어요~^^

<span class="guest">요산요수</span>님의 댓글의 댓글

요산요수 작성일

회원등록하고
닉네임 세련된걸로 바꿨네요
산수의 경치를 즐긴다는 뜻의 요산요수
잘 풀렸슴 좋겠어요.^^

<span class="guest">금오도민</span>님의 댓글

금오도민 작성일

애타게 모든 분들이 기다렸던 그 분! 쏨뱅이 님 이시네요
아름답고 섬세하고 창의적인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셨는데
이제라도 뵙게 되어 정말 반갑네요

어렵게 살았던 어린 시절과 금오도의 대자연이 이런 감성을 갖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에세이 감상문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금오열도 부분이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경험담을
더해 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세이 중의 "청성머들", "노랑바구", "웃가람" 등이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언제 시간 되시면 글 속에 있는
지명을 설명해 주시거나 지도에 표시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반갑고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span class="guest">요산요수</span>님의 댓글의 댓글

요산요수 작성일

반갑습니다 금오도민님
기회되면 노랑바구 청성머들 웃가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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