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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오도


찾아가는 금오도, 찾아오는 금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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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따앙 조회 829회 작성일 24-03-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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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있든, 시골 학교에 있든, 새벽 어스름만 되면 달빛마저 져서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시린 바람이 어디선가 바다냄새를 몰고 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도심가 근처 어딘가에 갑작스레 등대가 우뚝 서있을 것만 같고, 금오도가 제 근처로 왔다는 상상까지 듭니다.


해가 뜨면 지상에서 오래 있어, 여기저기 바랜 소라껍데기들이 바닥에 깔린 자갈들과 부딪혀, 걸을 때마다 생그러운 소리를 내왔던 기억이 납니다. 해가 중천이면 뙤약볕에 헐떡이며 자동차 안 그늘에서 부채질을 하던 소리가 났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면 금오도에 있는 집 청소를 끝내신 어른들이 모여 낮잠을 주무시고, 저도 어느새 잠들었습니다. 해가 지면 따뜻한 밥과 반찬 냄새에 깨어났었습니다.


언제 고기를 잡아오셨는지, 평소엔 보기도 힘든 커다란 물고기 비린내는 곧 고소한 연기로 거실을 채웠었습니다. 오순도순 왁자지껄 오랜만에 만난 외가 친척분들과 회포를 푸는 소리에, 평소 비어 고요하던 외갓집은 사람의 온기로 가득해집니다.


달이 뜨면 오래되어 보풀이 까슬해진 이불에 누워 모기향과 함께 모기를 쫓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일어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별 것 아닌 휴가철의 사흘 나흘의 엄마를 따라가 금오도에서 보냈던 여름은 제겐 낭만이자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긴 삶을 보내지 않은 제게까지 큰 안식처가 되어준 금오도. <금오도> 에세이집은 금오도 홈페이에 글을 쓰신 분들과 우리 엄마에게  금오도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가늠할 수 있는 책입니다. 


잠자리가 바뀌어 해가 뜨기 직전에 종종 깨어났던 저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스름을 등지고 홀로 서있는 등대와 그 뒤에서 천천히 트는 동이 바다와 등대를 비추어 주면 그제야 ‘금오도에 왔다’라는 실감과 함께 그림 같은 장관을 만끽했습니다. 그 장관에 반한 저는 아직도 새벽 어스름이 되면 제가 어디에 있든 금오도가 저를 찾아온다고 느낍니다


<금오도>에는 그 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분들에게는 금오도가 저보다 더 자주 찾아오고, 짙게 찾아오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렸을 적 어느 오솔길에서 엄마가 갑자기 보라색 풀 대를 꺾어서는 너무 익었다며 아쉬워하셨던 풀이 삐비였다는 것을  2부 "삐비"에서 공명 님이 보라색 풀은 잔디의 꽃대이며 덜 자란 삐비를 뽑아먹고, 찔구를 분질러 먹는 야생의 간식임을 알려주셨고,


3부 "전원일기"에서는, 청성머들에서 수경 끼고 자맥질하셨던 쏨뱅이님이 집 근처 작은 항구에서 해초에 미끄러져가며 고둥을 한 아름 잡은 어릴 적 추억을 상기시켜 주셨고,


5부의 명제님이 "고향 바다"에서 객지에 나갔다가 벽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바다에게 고뇌를 던질 때, 살이 타는지도 모르고 등대를 등지고 넋을 놓고 바라본 바다의 윤슬에 한동안 눈이 침침해진 제가 옆에 있었던 것처럼 


검바위, 옥녀봉, 솔고지등 처럼 이름도 생소한 곳은 아직 알지 못하지만, 금오열도에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한 번이라도 보신 분이 계신다면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글을 쓰신 분들과 어디든 함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다내음이 납니다. 


저는 이제 만 스물셋, 미술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올해 대학교 2학년이 되십니다. 제 학교가 너무 멀어 가족들이 무슨 일이 있든 축하해 주고 슬퍼해줄 수 없는 상황에 애교까지 없는 딸이라 엄마께 축하한다는 말을 못 해준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만학도를 응원한다는 두리뭉실한 주제를 가졌지만, 전체적으로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내용이 된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졸업작품으로 냈습니다. 거기서 짧게 금오도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금오도 바다에는 항상 같은 바다 냄새가 나. 


30년 전에도 그랬을 거야.


거기에 두고온 엄마의 꿈도 30년째 같은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엄마를 기다려 왔을 거라 생각해”


엄마는 나고 자란 금오도를 떠나온 사람이고, 저는 나고 자랄 때 금오도에 머물러 본 사람이기에 이 구절에 담기고 느낄 수 있는 깊이는 다르겠지만, 제일 눈물짓게 만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금오도는 한 가정의 모녀를 위로해 주는 섬이 되었습니다.


금오도는 그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금오도> 책을 펼치면 나오시는 글 쓴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리움, 낭만, 감정이 가득 담겨 있는 섬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로로든 호기심이 생겨 방문하는 이에게 또 그런 섬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저도 미래에는 건물이 꽉 찬 도심으로 향하겠지만, 안식은 금오도로 향하게 되겠지요. 


덕분에 올해 여름도 설렙니다.


댓글목록

<span class="guest">미리</span>님의 댓글

미리 작성일

어머나
너무도 푸르고 맑은 글이 올랐네요.
차세대 금오열도의 손주 손녀님들의 이야기가 많이 올랐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만학도인 엄마를 응원해 드리는 마음이 참 예쁩니다.
열심히 재능을 갈고 닦으셔서 자랑스런 금오열도의 인재가 되어주셔요.
기쁨과 감사로 잘 읽고 갑니다.

<span class="guest">애린</span>님의 댓글

애린 작성일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떨려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게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오래 기다린 보람을 주시는군요
우리의 아들 딸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고향이라면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을 것 같아요
글이 너무 맑고 예뻐서
제 마음이 다 착해지는 것 같아요.
그 엄마 참 좋으시겠네요. 부럽습니다 ㅎㅎ
고운 글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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